과학자는 정치를 하면 안된다는 농담과학자는 정치를 하면 안된다는 농담
Posted at 2011/11/27 21:04 | Posted in <에세이>/과학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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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이나 환경오염의 위험에 대한 근원적인 책임이 과학에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우리는 과학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쉽게 접할 수 있다. [1] 우리는 어떤 제품의 광고를 볼 때 이 제품이 다른 제품에 더 우수하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말을 통해, 주장의 근거가 탄탄하고, 때문에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 현상을 보게된다.
과학에 대한 위와 같은 막연한 신뢰는 일상 생활이나 매체를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많은 학문 분야들은 과학적 방법으로 대표되는 경험과 실제로부터의 이론적 도약, 도약과정에서 나타나는 귀납과 연역의 방법과 가추와 역행 추론의 사유 방법들[2] 로부터 통계 모델, 실험 등으로 경험을 체현해나가는 과정, 바로 이것을 과학적 방법이라 부르며 오늘날의 사회학, 정치학 등에 광범위하게 ‘과학적’이라는 주장을 스스럼없이 행하고 있다.
때문에 과학은 번창하였다. 행정과학, 스피치 과학, 산림 과학, 낙농 과학, 매장 과학 심지어 창조과학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번창은 지난 300년의 기간 동안 물리학의 의심할바 없는, 앞서 언급한 이른바 ‘과학적 방법’의 성공에 대한 사회 과학과 인문 과학이 물리학의 성공에 대한 해석과 이해, 그리고 적용의 결과이다.
이러한 과학적 방법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실증주의 적이며, 경험주의적이다. 전통적으로 실증주의에서는 인간을 주어진 사실들을 수동적으로 감지하며, 그것의 일정한 결합을 기록하는 존재로 전제한다. 여기에 경험주의는 사건과 사건간에 경험적으로 확인 된 것에 대해서만 기록하는 존재로 전제한다. 때문에 사유의 결과 도출된 과학적 지식이라 해더라도, 사유화된 지식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이 경험적으로 도출되지 않는다면 그 지식의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게 된다.
바스카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 경험의 취득 과정은 경험적 영역과 현실적 영역, 실재적 영역의 층위로 구분된다. 가령, 성냥은 발화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경우 현실적으로 발화하기도 하며, 발화한 것들 가운데 일부는 경험적으로 관찰된다. [3] 과학은 각각 실재적인 것, 현실적인 것, 경험적인 영역들의 지속적인 변증법 속 판별과정 및 구성, 설명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해석되고 사회과학과 인문과학 등에서 적용되어 왔던 ‘과학적 방법’은 과학이 걸어왔던 과학사와 실질적인 과학의 혁명적 변혁 과정 가령, 갈릴레오나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의 혁명적 변혁과정은 위와 같이 규격화된 표준적 과학적 방법을 따르지 않으며 또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사회 과학과 인문 과학은 적어도 현대 자연과학이 실증주의적, 경험주의적 방법론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은 과학적 방법에 기초하여 연구 될 수 없다. 과학적 방법의 서술, 자연의 사실에서 경험적 방법에 의해 규칙성을 기록하고 사건들을 예측, 포괄하여 법칙을 만드는 것으로 정의된 것처럼, 인간의 행위를 기록하고 그 행위와 관련된 규칙 및 규범, 사회적 현상을 기록, 파악하는 것으로는 자연이 아닌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으로서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자연과학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과학에 대한 신뢰는 확증된 이론에 따라 개인적 견해에 토대를 두지 않는 의심할 바 없는 객관성을 보장해 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령, 뉴턴의 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이론 중에 어느 이론이 더 근본적인 이론인가의 문제에서 이견의 여지 없이,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뉴턴의 이론보다 이론적으로 더 근본적이라는 결론을 도출 할 수 있다. 만일 이것에 동의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때문에, 그러하기 때문에 과학이 매번 의심할 바 없는 객관성을 담보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학은 사회적 성격이 강한 협약주의에 따르고 있다.
옛소련 스탈린 치하에서 농생물학자인 트로핌 리센코는 환경조건이 바귀면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나며, 이렇게 획득된 형질은 유전된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과학적 근거가 되기도 했던 이 이론은 소련 공산당에 의해 프롤레타리아의 학문으로 공인됐다. 반면, 정통 유전학은 부르주아 학문이라는 낙인을 받아 학계에서 숙청됐다. 권력이 된 리센코는 자신을 비판하는 학자까지 처형하기도 했다. 과학계는 이후 이념에 의해 과학과 지식이 억압당하거나 조작되는 현상을 리센코이즘이라 불렀다. [4]
리센코이즘은 한때 소련을 비웃은 하나의 상징이었지만, 이는 근대 사회에서도 역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기독교 근본주의자인 레이건 대통령 때 일부 주에선 창조론이나 지적 설계론을 중고교 교재에 포함시키기도 했으며, 부시 대통령은 낙태 금지를 옹호하는 차원에서 낟태가 정신병이나 유방암과 관련되 있다는 연구를 후원했다. 또한 미국은 석유 메이져의 이익을 위해, 온실가스와 지구온난화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연구 결과를 지원했다. [5]
한국 역시 좋은 예가 있다. 미국산 쇠고기나 한반도 대운하, 천안함 사고와 관련한 정부와 정부기관의 주장은 과학의 이름을 이용해 그 안전성과 실효성, 타당성을 주장했다. 과학은 정치적이며, 협약적이고, 생각보다 순수하지 않은, 과학은 그 자체로서 사회성과 정치성을 일면에 내포하고 있다. 특히 현대 문명이 취득한 과학의 종교적 신뢰는 이러한 과학의 정치성과 사회성을 더욱 강력하게 내포하고 있다.
얼마전 재미난 기사를 읽었다.
“과학자는 과학을 해야 한다. 절대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 왜 정치권에 기웃거리느냐, 과학을 잘해서 국리민복 증진에 기여하고 한 명의 일자리라도 더 만들어야 한다.” [6]
안철수 원장의 1500억원 기부에 최중경 전 지경부 장관의 입에서 나온 흥미로운 말이다. 이 말의 실질적 의미와 속내, 그리고 이 말을 행한 주체로 인해 그 의미가 매우 분명하다는 점은 흥미롭고 자명하다. 하지만 이 말과 말을 행한 주체를 서로 분리시켜, 문장만을 분석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과학은 그 역사적 배경 속에서 기본적으로 기존의 과학적 지식에 대한 종교적 믿음인 객관성과 합리성에 대한 과학적 믿음 배치되는 사회성과 정치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자는 정대 정치에 관여하면 안된다는 말은 과학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 현 정부의 인사라는 점을 추가적으로 고려하면, 위 주장은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된다. 현 정부의 지난 광우병 파동과 천안함 사고 당시 정부가 이용했던 과학의 정치적 이용 행태는 과학의 정치성을 적극 이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만일,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인문, 사회의 전문영역인 정치에 관여 할 수 없고, 따라서 정치는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만이 관여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이는 반대로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이해가 전면적으로 부족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은 기본적으로 그 연구방법과 과정에서 과학적 방법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 방법을 체택한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역시 정치를 하면 안된다는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국리민복의 증진과 일자리 창출의 핵심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이다. 또한 복리민복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은 그 목적으로부터 정치성을 띈 과학이 된다.
과학자 개인은 정치의 속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 정치에 직접 가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과학의 정치화가 아닌 실질적인 과학문제를 정치 의제화 하거나, 최중경의 농담처럼 국리민복의 위한 과학을 위해서 정치과학자는 필요하다. 과학은 이 처럼 그 역사적 배경에 사회성과 정치적 속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지금과 같이 과잉 정치화 되지 않도록, 과학자는 절대 정치를 하면 안된다는 농담은 그냥 무시해도 좋다.
[1] 알랜 차이머, 과학이란 무엇인가?, 서광사, 1999, 19
[2-3] 앤드류 콜리어, 비판적 실재론 로이 바스카의 과학철학, 후마니타스, 2010
[4-5]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88452.html
[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1/17/2011111700591.html
http://snowall.tistory.com/2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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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자는 정치를 하면 안되나? // @melotopia 2011/11/28 18:54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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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wallf 2011/11/28 18:54 [Edit/Del] [Reply]그분 과학 성적이 어땠나 궁금하네요. 개인정보겠지만-
2011/11/29 05:20 [Edit/Del]
블랙체링제 생각엔 그냥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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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_f 2011/11/30 11:21 [Edit/Del] [Reply]과학자가 정치를 했다간 모-나라 꼴 날 가능성도 ㅋㅋ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