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있고, 무엇을 해야하나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있고, 무엇을 해야하나

Posted at 2011/11/24 23:51 | Posted in <에세이>/에세이


최근 페북에서 노느라 블로깅을 잘 못했습니다.... 그래서 날로먹는 포스팅으로 페이스북에 썼던 내용 대략 옮겨봅니다.. 아, 그다지 의미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이기심의 절제를 권장하는 사회체제를 유지해 왔다. 6~14세기 불교시대, 14~16세기 유교 시대가 모두 어떤 형태로든 원시대의 이해와 공동체의 의식을 옹호하는 체제였다. 

이러한 사회 기조와 체제는 개인의 발전을 억압하는 체제라 생각할 수도 있으나, 덕분에 민족 공동체가 살아남고, 문화유산이 현재까지 전해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여한 것 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의 한국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원시대의 이해와 공동체 의식을 지키는, 이른바 전통적 의미에서의 보수는 일제 통치를 거치며 완전히 박살났다. 

많은 수의 사회 구성권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이기심에 몰려 친일 행위를 선택하기 시작했으며, 자본주의의 보급으로 전통적으로 권장되어 오던 이기심의 절제는 거세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는 신 자유주의로 꽃을 피웠다.

자본주의의 보급으로 세계 경제는 발전했고, 이를 토대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근대사회제도와 학문, 문화가 놀랍도록 발전했다. 무엇보다 수 천년간 민중들을 억합아던 각종 사회적 차별이 점차 철폐되고 자유와 평등이 확대되어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는 근대 문명사회가 건설되었다. 이런 놀라운 발전을 이끌어 온 곳이 바로 근대 서양의 자유주의이다.

19세기 유럽에서 자유주의가 정치적으로 강세를 띤데는 이러한 경제 자유주의의 공로가 컸다. 자유주의는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보고, 국가는 이에 대한 국가권력으로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을 주요 경제 정책으로 적용했다. 

이렇게 19세기 말까지 자유주의는 모든 선진국의 지배 담론이 되어 중요한 정책 논의는 모두 자유주의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유주의의 내제적 모순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러한 모순의 근본적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20세기 들어서면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소련 공산 혁명의 파국으로 모순에 대한 대안 논의는 이루어지지도 않은체, 1970년대 맞은 석유파동은 스테그플레이션을 불러왔으며 결국 내제되어 왔던 자유주의의 모순으로 경제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1970년대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타난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였다. 

신자유주의 경제체계의 이념은 노동의 가치보다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정부가 주장하는 작은 정부와 국제 무역의 확대, 관세장벽제거와 공공부문고용의 축소, 공기업의 민영화, 부의 집중 증 자본계급에 대한 감세와 함께 국가의 복지 지출을 줄이는 것이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득세하기 시작한 이루, 점차 대중은 윤리적 의식 없이 돈만을 추구하는 천민자본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른바 돈만 밝히는 배금주의의 시작이자, 돈지랄의 시작이다.

이 속에서 대중에 형성되고 논의된 여론은 대체로 말기 암 판정 뒤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유사한 방식으로 발달해 왔다.

1. 부정단계: 나랑 상관없어,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똑같은 놈들이야

2. 분노단계: 뭐? 물가고, 월급이고 이게뭐야!

3. 협상단계: 못살겠다, 똑바로 해 달라

4. 우울단계: 뭐야... 시위하고 날뛰어 봤자 안되자나

5. 수용단계: 그래, 이렇게 사는거지. 뭐..

따라서 이러한 맥락 속에서의 인민의 정치판단 행태는 자신을 애써 변호하고 애써 눈을 가리려는 형태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얼마전 사마귀 유치원의 국회의원 풍자로 강용석이 개그맨 최효종을 고소하는 일은 한편으로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마귀유치원에서 당시 풍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평소 잘 안가던 시장에 가서 국밥 한그릇 먹고, 악수만 해주면 되고, 지역민들이 좋아할 만한 엉터리 공약만 빵빵하게 해주면 된다. 공천개파 줄서기를 중점으로 둔체, 선거기간에만 유권자와 대화하는 척만 하면 된다. 는 등의 내용이다.

이건 아무리봐도 이건 국회의원 풍자가 아니라, 유권자 풍자다. 요약하면 이렇다. 

‘그래도 대중은 찍어준다.’

평소 안먹던 국밥 한번에 먹고, 악수만 해주고, 지켜지지도 않을 공약만 늘어놓는다는 걸 뻘히 알면서 찍어주고, 또 속았다며 한 숨 내쉬는건 누군가. 광고는 기본적으로 과장이 섞여 있으며, 광고의 내용을 상품의 실질적인 품질과 성능으로 곧바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상식처럼 말하고 있음에도 매번 똑같은 주기로 ‘또 속았다!’라며 말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한나라당은 뱉은 말은 지키지만, 민주당은 뱉은 말도 못지킨다, 그런데 이번에 한미FTA 폐지하겠다는 민주당의 말은 과연 믿을 수 있는가?’라는 희망섞인 기대는 어디서부터 나오는가?

적어도 한나라당은 찍지 말자와 같은 말로 대변되는 최소주의적 관점과, 선수가 아닌 심판임을 자처하면서 뛰어드는 자칭 중립주의자들의 목소리, 그리고 착취당하는 현실을 고발하지만 남을 착취하고 있는 본인의 모습에는 눈감고 있는 대중의 이중 잣대의 논의, 포털의 여론조작을 비판하지만 여전히 포탈에 스스로의 종속, 자칭 인터넷 강국임을 호소함에도 기존 메스미디어에의 집착 그리고 여론의 죽음에 이르는 순환적 단계들.

이러한 행태를 잘 보여주는 영상 하나를 소개한다. 쥐나라의 이야기다.

2008년 인민은 천민자본주의 속에, 자신의 욕망에 투표를 했고, 지금 그 결과를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다. FTA의 강행처리는 그 정점이다. 욕망을 바라면서 이타성을 추구해 줄것을 기대한 것을 처음부터 불가능한 형용모순이었다.

2011년은, 위의 쥐나라 이야기에 비유하자면, 쥐들이 스스로 고양이를 밀어내고 쥐 스스로가 통치하는 세상을 건설한 의미있는 사건이 벌어진 해다. 만국의 99%여 분노하라고 떠들었던 때가 20세기, 그 뒤 천민자본주의로 인한 근본주의, 개똥국가주의의 취해서 1%가 99%를 지켜줄 것이란 환상을 가지고 살던 나라에서 이제 환상을 조금씩 깨고, 대의민주주의로 포장된 귀족정치에서 진정한 민주주의, 급진적으로 천민민주주의로 가는 희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희망은 실현될 것인가? 잠시 신화 이야기를 해보자.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이전 신화에서 등장하는 괴물같은 힘이나 탁월한 능력을 지닌 신이 아니라, 계략을 사용함으로써 매 순간의 위험한 모험을 해 나가는 것을 그린다.

이 외눈박이 괴물에게 붙잡힌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에게 포도주를 선물하고, 이것의 보은으로 가장 마지막에 잡아먹을 것이라는 약속을 하며 이름을 물었다. 이때 오디세우스는 그의 이름을 우데이스(Udeis)라고 대답한다. 우데이스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탈출하고, 이를 알게된 폴리페모스는 이에 분개해 울부짓었다. 이 소리를 들은 그의 동료들은 ‘누가 그랬는지’를 물었고, 그는 ‘우데이스가 그랬다’라고 대답했다. 그의 동료들은 폴리페모스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가 그랬다’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기존의 신화시대에 전해져 내려오는신화의 내용과는 다르다. 당시의 신화는 동서양에 관계없이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발현한 다신적 전통을 가지며, 이후 서양을 중심으로 유일신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천일동률이라는 그리스 신화의 우월신, 그리고 이 곳으로부터 신의 인간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과 그에 대한 저항은 17세기 과학주의 이후 등장한 돈키호테로부터 묘사된다.

자아의 형성과, 말과 사물의 분리, 단순한 미메시스적 구분의 한계만을 가졌젼 기존 인긴 체계의 변화, 필요에 의한 생산에서, 생산을 위한 생산으로의 변화 과정에서 나타난 사물의 객체화 과정, 그리고 주체로부터의 분리는 담아내고 있다.

돈키호테의 모습은 주체와 객체의 분리에 대한 저항이자, 미메시스로의 회귀를 담은 저항의 목소리다.

17세기 이후 등장했던 이러한 인식의 변화. 문화의 변화는 문명의 발전화, 사회구조적 변화과정속에서 나타났으며, 계몽주의는 이러난 논의의 산물이었다.

인간의 인식 변화는 17세기 후반부터 나타났기 때문에, 그 변화가 진화적 방법으로 인간에 태생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여전히 인간은 동물적 본능에 사로잡혀 있는 하나의 동물일 뿐이다. 때문에 계몽, 교육을 통해 변화의 생물학적인 진화역할을 대리수행해오고 있었다.

때문에 교육의 문제는, 교육의 방법론의 문제는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이러한 17세기적 변화의 요구에도 응하지 않는다. 또한 인식의 변화에 거스르고 있다. 무비판적 수용과 단순한 앵무새, 붕어빵 틀어서 대량생산된 붕어빵들을 양산하고 있는 하나의 부속품으로써의 기능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결과가 모여준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 자본주의에 젖은 자본에 의한 동일화 논리와 비동일성의 배제, 주체성의 거세, 주체의 타자이행, 무비판적 수용 그리고 우물안 개구리.

문제는 교육이다. 붕어빵 틀에서 찍어내는 동일한 구성품들로의 한 개인, 마치 식민지시절 일본에 의한 일제사상교육과 같은 현제의 산업사회적 과점의 교육으로는 다음 세대로의 변화를 꾀할 수 없다.

그리고 다음 문제는 감정이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창조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의 문장이 가진 논리 체계나 구조로 이를 입증하거나 증명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 

어째서 그것이 문장 구조로써 입증 가능한지, 그것이 왜 논리적 모순을 야기하며, 논리적 구조와 체계를 통해 반증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근거로 수십권의 책과 수백편의 논문을 들이대며 설득 해봐도 소용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들은 결국 먹물들만 알아먹을 뿐이고,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래 너 잘났다'는 식의 감정적 반응만 되돌아 올 뿐이다.

창조론이 진화론 보다 더 잘 먹혀드는 이유는 그것이 '감정'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이나 무신론은 객관적 이론이나 증거를 들이데지만, 창조론이나 그게 대한 반론은 감정적이고 감상적이다. 때문에 감정적 설명은 먹물들의 말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때문에 감정을 죽이고, 논리와 이론만이 논의되고 통용되어야 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이다. 정봉주 전 의원의 말을 빌리자면, 국민에겐 법과 논리 이전에 ‘감정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것은 반대로 그들에게 요구되는 사안이다.

집단이 보이는 사회적 감정의 표현은 단순히 각 개인의 허상과 논리적이지 않은 단순한 감정에 의해서만 발현되지 않는다. 집단의 감정에 사회적 맥란이 숨겨져 있다. 지금의 이 맥락을 읽어야 한다. 왜 지금 민중은 분노하는지, 헌법의 가치를 위배하고, UN인권권고안조차 무시하며, 시민에게의 반인권적 탄압을 행하면서도, 북한인민의 인권 걱정만 하는, 헌법 체제를 뒤엎으려는 이 땅의 진정한 종북 빨갱이들, 체제전복자들은 그 이유부터 찾아야한다.

자본주의는 올바른 방향이 아니며, 우리의 미래,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들어났다. 자본주의는 이미 실패했음이 들어났다. 그들의 끝임없는 탐욕에 의해, 그렇다고 복지국가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공산주의는 매우 이상적이지만 이상적이기만 할 뿐 우리의 미래적 대안이자 지향해야할 방향이 될 수는 없다.

지금은 마치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 처럼 "낡은 것은 수명이 다했지만 아직 새로운 것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 속 한국은, 무너져가는 시장근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속에 대안 모색은 커녕, 강력한 후진기어를 밀어넣고 있다. 과거 시장근본주의에서의 권력과 시스템을 잊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는 기득권들에 의해.

이제 우리는 분노해야한다.

http://blackcherrying.tistory.com/trackback/303 관련글 쓰기

  1. 교육이 중요한데, 우리나라의 교육은 '붕어빵'을 찍는 것도 모자라서 갓 구워진 '붕어빵'을 일렬로 줄세우죠..
    아직까지도 학원(붕어빵 기계(?))에 애들이 바글바글 한 모습을 보면 왠지 씁쓸하답니다... 왜, 밤늦게까지 저래야 할까? 붕어빵 중에서도 일등 붕어빵이 되기 위해서?!
  2. 격암
    잘보고 갑니다. 공동체를 잊지 않되 깨어있는 개인들이 스스로 자기성찰을 많이 해야겠지요. 그게 올바른 교육의 길이고 말입니다.
  3. 음...
    근데, 현재의 우리 상황을 너무 좀.. 표면적인.. 그런 시각으로 보시는 거 아닌 지 모르겠네요.

    ...

    정녕 저들은 잘 못된 교육을 받은.. 막장이래서 저런다 생각하십니까?
    ...

    아마도 많은 분들과 저의 시각이 여기서부터 갈리는 거 같은데 말이죠.
    암튼, 저들이라고 해서 이 모든 행윌.. 특히, 한국내 막장세력(?)들이 정말로 자기들 이익만을 위해서 저런다고 생각하긴 좀.. 어려워보이는군요!
    물론, 그런 막장 정치,경제정책이나 사회 부정부패 토착화를 도모하고 있는 저들이 이익을 보지 않는 건 아닐 겁니다.
    확실히 뭔갈 얻긴 얻을 겝니다.
    허나, 그걸로만 그들을 몰아부치거나 설명할순 없는 일이죠...

    그들(?)을 분석하자면,
    확실히 극극좌파(?)라고도 분명 표현할 수 있는 집단이니까요~

    아마 얼마간 저들과 이 사회가 왜이리 돌아가는 지 알고 계신다면야 제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아실테고,
    그게 아니라면 웬 미친 놈이 헛소리하는 것으로 들릴텐데...


    암튼, 제가 이 모든 막장상황에서 진정으로 바라는 건 이겁니다.
    이 지구상에 유태인들만 남게 해선 아니된다는 것과 동아시아에서 전쟁.. 더 나아가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걸 막자는 거지요!
    (이것들이 유럽선 무기를 줄이고 국방비를 줄이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동아시아에선 오히려 늘리게 유도하고 있기에 더욱 열받고 있는 상황인데...)

    우리 민족의 명운이 달린 상황이기에.. 여차하면 완전히 공멸할 수도 있다 생각하기에...

    뭐, 제가 이런다고 해서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만,
    그래도 노력을 해보려 이리 찌질(^^)대고 있는 상황인데.. 음~...
    암튼, 고민이 많네요~
    그렇다고 다~ 죽자 그럴 수도 없는 일이고 참...
    쩝...
  4. 우리는 어디에도 없지만 딱히 여기에 있는건 아니고, 어디로 가고 있는건 아니지만 딱히 멈춰있는건 아닙니다. 꽤나 양자역학적인 상황이지요.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

1 ... 17 18 19 20 21 22 23 24 25 ... 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