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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노벨상이 태생할 수 없는 구조다한국은 노벨상이 태생할 수 없는 구조다

Posted at 2011/08/03 20:09 | Posted in <에세이>/과학에세이


과학기술과 Science&Technology

과학이란 무엇인가? 다소 철학적 질문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질문들을 일반인들에게 하면 접미어처럼 따라 붙는 말이있다. 다름아닌 기술이다.

과학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이해는, 어떤 자연 현상에 대한 호기심, 앎의 충족 그 자체이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라고 일컬어지는 탈레스는 델피의 신전에 가서 신탁을 묻거나 소포클레스처럼 영감에서가 아니라 사물을 관찰하고 실험하고 추론을 통해 답을 얻으려고 했다. 현대과학은 자연을 설명하는 앏의 근원적 존재가 미시적인 존재로 물질에 관계없이 존재할 것이라는 환원주의적 관점에 소립자, 양자, 쿼크까지 논의하는 추상적이고 철학적 단계까지 넘어왔다. 그러나, 방법은 실증적이고, 실험과 방법을 통해 경험을 넘어서는 답변을 얻으려 한다는 점에서, 그러므로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과학은 순수한 지적 호기심이라는 기본적인 앎의 욕구이다. 물, 바위, 나무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고, 무엇으로 이루어 졌는지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역으로, 물과 바위, 나무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따라서 과학은 기술의 동의어가 아니며 혼돈해도 되는 개념이 아니다. 기술은 지식이 아니며, 기술은 지식의 과학의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에선 왜 기술이 과학의 동의어 처럼 사용되는가?

올해 이명박 대통령은 과학기술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세계 방방곡곡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데 최첨단의 기술 제품을 내놓고 있어 가슴이 뿌듯하다, 그 뒷받침에 과학기술이 있다. 이 기술 개발만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과학에 대한 이해와 사고가 철저하게 기술을 목적으로 함을 알 수 있다. 비단 현 정부의 과학에 대한 이해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1980년대 기초과학분야에 대한 지원을 시작한 이래 과학기술정책의 기조와 방법, 철학은 정권에 상관없이, 지식을 위한 과학이 아닌, 목적을 위한 기술개발에 집착해 있다. 원인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사농공상이 중심이 된 동양 특유의 기술, 다른 하나는 7~80년대 경제개발계획 과정에서 성장, 수출 위주식 지원정책으로 과학과 기술이 동의어화 된 것이 주요 원인이다.

한국은 과거 빛나는 기술이 있었다. 그 중 에밀레종의 고리와 석굴암이 대표적이다. 

에밀레종은 높이 3.7m, 무게가 22톤의 신라시대의 유물이다. 이 종을 1975년 새로지은 박물관으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할 때 에밀레종을 고정할 고리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에멜래종의 고리를 제작하는 작업은 당시 포철이 당시 최고의 기술을 이용하여 진행하였는데, 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금세 휘어졌다. 이 정도의 무게를 쇠막대기 하나로 지탱하기 위해선 강하면서도 부드러워야 하는데, 강하면 부러지기 쉽고, 연하면 휘어지기 쉬운데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옛날 쇠막대기를 그대로 사용했다. 컴퓨터를 만들고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을 발달했지만, 과거에 배해 비약전 발전일 이루었다는 현대기술로도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종 고리도 만들지 못한 것이다.

석굴암은 정사각현과 대각선, 정삼각형과 수선, 원에 내접하는 정육각형의 사용 등 수학적 기법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예술이다. 또한 출입구의 아치형 천장과 위 광창은 햇빛을 잘 맏게 하고 원할한 통풍이 이류어지게 하며 온도와 습도를 자연히 조절하게 하는 과학적 원리로 만들어 졌다. 하지만 일제시대 석굴암을 분해하여 다시 복원하려 했지만, 석굴암의 수학적 정교함을 재현하지 못해 시멘트를 이용한 보수공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자연히 유지되던 습도와 온도 조절은 사라지고 이끼와 서리가 끼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현재는 기계에 의한 냉방과 난방, 습도를 조절하기에 이르렀다. 석굴암의 정확한 원리를 밝혀낸 것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알려졌다.

현대에 이르러 그 원리가 밝혀진 수학적 정교함과, 현대의 기술로도 재현이 불가능한 기술, 이러한 빛나는 기술이 있었는데 왜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 기술은 왜 지금까지 전해지지 못한것일까?

이러한 기술 혹은 과학이 전수되지 않았던 것은 호기심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과학이 아니라 기술개발을 위한 목적으로 과학을 했기 때문이다. 22톤의 무게, 진자운동을 할 경우 무게가 2배로 늘어가는 이 종을 지탱하는 고리를 만드는 기술은 그 목적이 달성하면 엔지니어링 차원에서 그것으로 끝나고 만다.

조셉 니담이 중국 과학사를 연구했을 때 중국의 과학이 중단된 것은 알기 위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기술을 개발할 목적으로 과학을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것과 일맥상통한다. 니담은 또 중국이 왜 근대과학이 형성되지 못했을까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있다.

중국의 천재들이 기술을 개발했을 때 왕권을 쥔 위정자들에게 눈에 띄어 선비 계층에 흡수시켰다. 정치에 참여하게 하고 관리하게 했다. 잘 봐준 것 같지만 이는 검열하고 땃짓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과 같다. 서구에서는 과학자의 장르와 정치의 장르가 따로 있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탐구에만 열중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결과 연금술이 화학이 되고, 점성술이 천문학이 되고, 주술이 의학이 된것이다. 그런데 기술을 목적으로한 차원에서 끝나고 만다면, 끊임없는 호기심을 추구하는 과학은 형성되지 않는다. 또한 정부에 흡수해 관리하게 만들고, 경계했기 때문에 그 기술은 이어지지 못하고 맥이 끊기고 만다고 니담은 분석했다.

동양과 서양은 역사적, 전통적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동양은 서구의 과학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입장이 된것은 어쩔 수 없다. 서양은 지중해 인근에서 도시국가를 기준으로 국가가 만들어 졌다. 이들 도시국가들은 90%의 노예와 10%의 시민의 구조를 이루는 소피스트들에게의 유토피아 였으며, 사고와 노동의 분리로 보다 자유로운 사유를 행할 수 있었다. 또한 지중해 연안의 인접한 도시국가들 간의 무역이 활발 했기 때문에 무역에 비판한 통계, 연산 등이 발달하며 수학이 태동한다. 이러한 서구의 역사적 전통으로 인해 과학은 동양이 아닌 서구에서 먼저 탄생할 수 있었던 원인이 된다.

초기 서양의 과학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중국과 일본, 한국은 서양 과학이 쌓은 노하우과 과정보단 기술 중심으로 이를 습득한다. 물론, 그들이 극비라 할 수 있는 자신들의 노하우를 알려줄리 만부했지만, 서구 과학 문물에 대한 배움의 태도는 단지 기술의 습득이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동양의 과학 수준 역시 기술중심의 수동적 태도에 지나지 않을까? 지금 중국은 자력으로 로켓을 발사하고, 기초과학 분야에서 역시 많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일본 역시 서구 선진국들의 무대로 알려졌던 노벨상 대열에 최근 17명의 수상자를 배출하며 기초학 분야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은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실적은 전무하며, 여전히 기술 중심의 집착과 선진국 타령의 수동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같은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동양의 기술전통이 현재, 이처럼 극명하게 갈려진 원인 어디에 있는가? 그 원인은 경제개발계획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7~80년대 모든 정부정책은 경제성장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중 과학도 예외가 아니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기초과학 분야에의 지원이 시작되면서, 과학은 기술 개발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수출경제를 활성화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사용되고 그렇게 인식된다. 모든 과학 정책은, 기초과학이 아닌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는 분야에 치중하게 되고, 단기간에 산업화, 제품화 가능한 항목에 집중하게 된다. 그 결과 과학은 장기적 안목에서의 자연에 대한 근본적 앎의 탐구가 아닌, 상품화, 제품화 가능한 기술분야로 환원된다. 때문에 탐구의 방법과 방식은 수동적이고, 주체적 사유와 탐구는 사회, 정책적으로 회의된다.

경제성장을 위한 방법으로 팔로워쉽은 유효적이며 효과적이다. 또한 과거 동양이 서구로부터 과학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 중국과 일본, 한국을 포함한 동양은 서양의 문물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이들 문물과 기술을 습득하며 이에 대한 자체적 탐구가 있었다. 과학적 탐구와 변천 과정, 자연의 근원에 대한 탐구는 지속되었으며, 서구와 유사한 방법으로 자연 탐구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러한 맥이 끊기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의 탓도 있겠으나,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다시 과학을 활용하는 단계에서 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논의과 이해는 차치한체 기술이라는 결과물만을 중시한 결과 비극은 시작되었다.

미국과 일본은 근대화과정을 거치며 그 전통적 문화와 결합한 과학적 철학과 이해를 구축하였다. 중국 역시 이러한 과정에 있으며, 중국적 방향으로 과학을 이해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과학에 대한 근원적 이해나 고찰, 철학은 전무한 체 과학적 연구의 부산물인 기술만을 중시하고 있다. 이것이 과학과 기술의 동의어화의 비극이다.


군사문화와 과학의 천시

미국 뉴욕타임즈의 자매지인 인터네셔널헤럴드트리뷴은 해병대 민항기 오인사격과 총기사고, 해병대 병사와 부사관의 자살 등 최근 발생한 사고들을 소개하며 한국의 병영 문화와 한국사회의 군대 군사문화 등을 분석했다.

신문은 한국의 병영문화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군대식 문화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추동하고 때로는 병들게 만드는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고 전하고 있다. 또 직장인 남성 거의 모두가 군 전역자이기 때문에 명령에 질문하지 않고, 상급자를 존경하며, 조직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전한다.

또 한국의 군사 문화는 이처럼 개인의 독창성을 억압하고 부패를 조장하며, 학교, 사정 에서 신체적 폭력을 용인하도록 하는 원인으로 비판받아 왔다면서, ‘너 군대 안갔다 왔냐?’라는 물음은 이런 경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에게 묻는 것으로, 군대는 남성에게 불합리는 참아내도록 배우는 곳이라고 전하고 있다.

서양 철학의 발달 과정은 스승의 이론을 제자가 비판하고 반증하는 역사로 이루어 졌다. 과학 역시 마찬가지다. 포퍼의 말처럼 과학은 반증가능해야 과학인 것처럼, 아인슈타인역시 뉴턴을 의심했을 때 위대한 과학적 업적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공자 이래 유교가 전통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반증과 비판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는 말로 비판받는다.

실제로 안동에서 열린 퇴계철학학회에서 퇴계의 사상과 철학을 비판하는 발표를 하였다 안동지역의 노인들에게 극심한 비난을 받았다는 일화도 있다. 비판과 반증의 정체는 학문의 발전을 저해하며 그 상태로 정체되게 만든다. 그러한 정통이 이제는 군사 문화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연구원들은 연구과정에서 선배 눈치를 살펴야 하고, 선배가 하기 때문에 하면 안되는 것이라 이야기하며, 밥줄 끊어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과학 탐구의 자율성은 군사 문화와 밥줄이라는 이름으로 거세당한다. 여기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과학 탐구의 자율성이 밥줄과 연관되어 있다는 웃지 못할 슬픈 사실이다.

앞서 고대 서구의 도시국가들에 대해서 언급했다. 당시 아테네에서 서양철학이 태동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90%의 노예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 경제 구조였다. 다시 말해 10%의 시민인 소피스트들은 소위 밥줄 걱정없이 자유로운 탐구와 사유가 가능했기 때문에 다양한 논의가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유과 고찰이라는 자유가 경제적으로 재제가 가해진다면 이제 정상적이고 자유로운 사유가 일어날 수 없다.

학문은 배고픔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지만, 궁함의 과학의 결과는 결국 산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벨 연구소와 구글의 창의성은 이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밥줄을 빌미로 학문을 닥달해서 나오는 것이 절대 아니며, 무의미한 무한 경쟁의 결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닫힌 시스템

존 롤즈는 현실적 관계 때문에 ‘옮음’에 대한 사람들의 합의가 제각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무지의 장막’을 가정했다. 이 ‘무지의 장막’ 뒤로 들어가게 되면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상황인지도 전혀 모르게 된다. 그럼이제 우리가 ‘무지의 장막’ 뒤에서 만난다면, 현실 이해관계의 영향을 배제한 체 ‘옮음’을 도출해 낼 수 있을까?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우리는 우수한 공학자나 과학자가 세계적으로 영향을 가지는 혹은 가질 것으로 기대되는 인재들을 롤즈의 무지의 장막 뒤에서 만난다면 이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현실의 이해관계의 영향을 배제한 체 ‘우수한 인재’를 구분해 내는 것은 가능할까?

이상적인 경우라면, 적어도 과학분야 내에서는 이들을 구분할 필요가 전혀 없다. 과학적 탐구와 연구의 토양을 만들어 주고 자생시켜서 나오는 성과를 보고 판단하면 될 뿐이며, 이를 구태여 구분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한국은 여기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논리를 대입하며, ‘차등의 원칙’을 부여한다.

선택과 집중의 논리는, 과학연구의 역사가 짧아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과 나란히 혹은 앞서갈 수 없으니, 잘할 수 있는 분야에만 선택,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차등의 원칙을 부여하여 이들을 구분하여 차등관리할 필요가 있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러한 선택과 집중의 대상 역시 모두 기술분야게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목적을 위한 차등, 집중 논리이다.

이러한 무지의 장막 뒤에서의 차등의 원칙은 사회모든 전반에 깔려 있다. 학교교육 역시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판단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철학을 하느치는 것이 아닌, 인간을 억압으로 길들이고, 복종을 강요해 온전한 스스로의 사유를 박탈시키는 역할을 역으로 학교교육이 행하고 있다. 거기에 대학은 일류와 이류, 삼류로 줄줄이 등급화된 서열로 사회적 지위를 형성한다. 청년은 이렇게 서열화된 학벌과, 스팩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다시 서열화 시키고 질서지운다.

과학은 어떠한가? 과학계엔 이러한 우스겟 소리가 있다.

미국은 새로운 것을 한다고 하면, 연구지원금이 나오고
일본은 미국을 따라잡겠다고 하면, 연구지원금이 나오고
한국은 5년안에 논문을 쓰겠다고 하면, 연구지원금이 나온다.

진짜 가치있게 생각하는 분야를 추구하고 지원하는 일은 없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한국의 시스템은 실적을 원한다. 가장 간단하게, 가장 그럴듯 하게 무지의 장막 뒤에서 그들을 구분해 낼 수 이는 가장 정량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연구 실적이라는 것은 인력을 투입하고 밀어부치면 항상 나오기 마련이다. 또 실적은 장기적으론 별 의미가 없는 연구일 수록 실적을 뽑기가 더 쉽다. 반대로 장기적 의미가 있는 연구도 시간을 쏟으면 그냥 나오는 것도 아니고, 네이처나 사이언스지에 항상 실리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장기적으로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쉬운 주제에 쉽게 손이가며 이 주제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거기가 한국 대학의 권위적인 시스템과 군사 문화 정점에 있는 교수의 지위를 이용하면, 인력투입으로 성과는 더욱 간단하게 나오게 된다.

이것이 현실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권력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이 시대의 권력층들이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이런 정량화된 차등의 원칙이자, 닫힌 시스템, 닫힌 문화이다. 심지어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무교육은 무상으로 실시한다는 원칙에 의거한 의무급식도 소득에 따른 차등 급식을 지원하고 있는 수준이다.

미국은 뿌리 깊은 과학풍토가 자리매김한 국가이며, 대학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대학의 수도 많고 대학의 재정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국가이다. 또한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동부 명문 8개 사립ㅂ대에 대한 미국인들의 생각은 한국사회의 SKY를 능가한다. 이때문에 미국이 학벌지상주의 국가란 오명을 받기도 하지만 한국과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아이비리그라는 학벌과 전 세계 유학생들을 빨아들이는 학문의 블랙홀 역할을 미국이 하지만 정작 미국인들은 반드시 대학에 가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학은 진정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진학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하다.

그 결과 고졸 출신에 대한 편견이 거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인 빌 게이츠는 명문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당시로서는 벤처기업이나 다름없던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웠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 역시 대학 중퇴자다. 전 세계적으로 소셜네트워크 열풍을 몰고 온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역시 하버드 재학시절 페이스북을 창립하여 현재는 하버드대를 중퇴했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명문대를 본인 스스로 중퇴해도 그 누가 뭐라고 탓하지 않는 사회, 오히려 그런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뒷받쳐주는 열린 문화가 결국은 현재의 미국을 만드는 토대가 되고 있다.

한국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만일 대학 중퇴라는 길을 선택한다면 곧바로 루저의 길로 접어든다. 학벌 사회에 고졸자란 딱지는 떠나지 않는다. 명문대의 중퇴는 미친짓이다. 자칭 명문대들에 대한 학벌주의는 어떤 의미로 미국을 초월한다. 이러한 토양 위에선 어떠한 창의적 인재도 탄생할 수 없다.

‘무지의 장막’ 뒤에서는 그 어떠한 판단도 성공하지 못한체 죽어나간다.


한국은 노벨상이 태생할 수 없는 구조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는 지난 해 10월 청와대에서 주재한 회의에서 세계 중심 국가를 향한 인재 육성 방안에 대해 건의했다. 건의 내용은 암기위주식 교욱과정내용을 20% 줄리고 대신 창의성을 키워주는 심화학습을 해야한다고 한다. 또 20년간 노벨상과학 수상자를 분석한 결과 30대의 연구 성과가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진 경우가 48%에 이른 가는 것은 근거로 20, 30대의 젊은 과학자들에게 석박사 학위 취득 후 5년간 일자리와 연구비를 제공하는 대통령 장학금 신설 방안을 건의했다고 하며, 노벨과학상 유망주 육성을 위한 노벨상 수상 프로젝트를 가동한다고 밝혔다.

자문회는 대학과 연구소가 박사 후 과정 인력에 자리를 제공하고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5년간 지원한다면 1개의 프로젝트를 마칠 수 있다고 밝혔다.

매년 발표되는 정부의 연구지원 분야는 융복합형 로봇, 기술경영, S/W, 플랜트, 엔지니어링, 방송기술, IT융합, 해양에너지, 폐자원 이용 등 모두 응용 분야에 집중되어 있고, 그나마도 모두 기술 분야에 집착되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계 방방곡곡에서 물건을 팔고 최첨단의 기술 제품을 내 놓고 있다며, 앞으로 5~10년 안에 노벨상을 받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으나, 이러한 발상과, 정책, 문화, 시스템적 기반에선 절대 노벨상이 나올 수 없다.

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발상은 이러한 관점에서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름 자체부터 과학을 산업화 하고, 산업화의 관점에서 비용과 노동투입 대비 성과라는 관점에서 투자되면, 해외 우수 인력들이 모이고 따라서 노벨상을 수상할 것이라는 허상에 젖어있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노벨상 수상을 위한 프로젝트를 만들며,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한 경진대회 개최 등은 시멘트위에 노벨상이라는 허상을 형상화한 씨를 뿌리고 물주고 가꾸면 노벨상이라는 꽃이 필 것이라는 발상에 불과할 뿐이다.

기본적으로 학문을 정부가 물주고 관리하여 키우는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틀렸다. 학문적 발전, 과학의 발전이란 학문하는 문화가 있어서 그것이 자생적으로 클 때 결국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서 학문이나 과학이란 그것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지만, 여기에 전혀 관심도 없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말하고 있는지 조차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이 문제다. 학문에 대해, 과학에 대해, 철학에 대해, 가치 판단에 대해 어떠한 깊은 고민이 없는 사람들이 어떤 시스템이 되어 간섭할 때 그것은 학문의 근본을 파괴하는 일이 되고 만다.

과학이나 학문은 노벨상을 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과학이 무엇인지, 학문이란 무엇을 하는 것인지도 생각지 않은체 과학은 운운하고, 노벨상 타령이나 하는 것은 싸구려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노벨상 타령하기전에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다.

노벨상은 노린다고 탈 수 있는 게 아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10729171509
http://boomup.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3/17/2010031700409.html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5M6Z&articleno=3443636&_bloghome_menu=recenttext#ajax_history_home
http://www.ddanzi.com/news/32715.html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atidx=0000052933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atidx=0000045252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859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17/2010101700550.html
http://news.donga.com/Column/3/04/20101009/31731026/1
http://news.donga.com/Politics/3/00/20110107/33788421/1
http://news.donga.com/Column/3/04/20101203/33034599/1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atidx=0000046455
http://scienceon.hani.co.kr/archives/13073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4/21/2011042101486.html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atidx=0000049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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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 잘 읽었습니다. 트윗 @konata37이었던 Toshi...(이하생략)입니다.
    정말, 명확하게 초점을 잡아 주셧군요.
    저도 과학도로서 (안그래보이겠지만...ㅜㅜ)걱정이 됩니다.
    특히 과학부분은 전문도서가 대다수 번역본인게 현실이죠.
    과학가지고 논쟁도 일어나지 않을 만큼 무관심...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어떻게든 미래의 과학도를 늘리면 좋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순수과학은 너무 무시당합니다. 과학자 하면 대부분 퀴퀴하다고 인식을 하고있고 말이죠ㅜㅜ
  2. 글을 다 읽고나니 한국에서 기초과학을 공부하긴 어렵구나. 라는 현실을 알게되어 씁쓸하기만 합니다.
    • 2011/08/04 20:37 [Edit/Del]
      어렵진 않아요. 남들이 좀 무시하고 뭐하는지 모르고 왜 쓸데없는거 하냐고 물어보긴 하는데, 해보니까 굶어죽진 않겠더라구요.-_-;

      물론 재수없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살지만요..
  3. 과학자들이 바라는건 별거 없고, 먹고사는 거 해결되고 연구하는거 방해 안하면 됩니다. 그런데 먹고사는데에도 애로사항이 꽃피고 연구는 행정업무로 중단되기 십상이죠.
  4. 무엇보다도... 군대! 가 결정타인 것 같아요..(11월 29일 입대 예정이거든요 ㅠㅠ;;)
    성격이 내성적인데,
    그러한 내성적인 성격의 장점은 무언가 한 분야에 골똘이 집중할 수 있다는 메리트(안철수 아저씨가 대표적인 사례) 를 이용해
    수학을 전공하고, 또 계속 수학을 공부할 계획인데,
    군대에서 내성적인 성격은 보통 남들과 다른 즉, '특이한=병신' 으로 취급되므로,
    결국 나를 피폐하게 만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군대가 "독창성,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이라는 사실에서 상당히 불쾌한 집단으로 여겨집니다...
    • 2011/08/05 13:38 [Edit/Del]
      거의 모든 원흉은 군대에 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입니다. 다양성을 거세하고, 명령에 복종하도록 하며, 상위의 비판을 금기시하며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의 원흉이지요...

      그나저나 군대에 가시는 군요... ㅠ 군대에 가면 신기한게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초등고등학교 심지어 대학에서까지 겪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다 군대에 가기위한 사전 준비코스였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생활이 크게 이질감 느겨지지 않을 겁니다..;;
  5. 비밀댓글입니다
  6. 김영화
    노벨? 아..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이용한 폭약의 실용신안특허? 맞나요?

    스웨덴의 폭약제조공장의 사장이었던 노벨로 기억하는데 .. ㅎㅎ 우리나라는 노벨상이 태생할 수 없는 구조다.... ?

    뭔가 이상합니다만, 탄생아닌가요? 그리고 평화상인가 뭔가 수여한 사람이 있지 않았던가... ?

    잘 못 알고 있는건지도 아니면 맞는지도.. 아리송. 찾아보려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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